[책마을] 5126번 실패 딛고 태어난 '다이슨 진공청소기'

입력 2023-12-15 18:42   수정 2023-12-16 00:34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글로벌 기술기업 다이슨은 뭔가를 더하는 것만큼이나 없애는 것도 혁신이라는 걸 증명해왔다. 1993년 작은 창고에서 출발한 다이슨은 전체 직원 1만4000명 중 절반가량이 엔지니어인 ‘기술 기업’이다. 청소기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등 고가 가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다이슨은 이제 농업, 의학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다이슨의 성공 뒤에는 무수한 실패작이 있었다. 다이슨의 ‘베스트셀러’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는 5127번째 프로토타입이었다.

다이슨 창업자이자 수석엔지니어의 실패와 성공의 역사를 담은 자서전 <제임스 다이슨>이 최근 국내 출간됐다. 제임스 다이슨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선보인 덕분에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다이슨에 대한 책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원서가 출간된 <제임스 다이슨 자서전>과 비즈니스 컨설턴트가 다이슨 성공 신화를 분석한 <다이슨 스토리>는 국내에도 번역서로 나왔다. 이번에 나온 <제임스 다이슨>은 원서가 지난해 출간된, 다이슨 스스로가 말하는 ‘최신 다이슨’이다.

‘1. 성장 배경’ ‘2. 예술 학교’ ‘3. 시트럭’…. 단순명료한 책의 목차는 마치 다이슨 제품 설명서 같지만, 책은 다이슨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인간 다이슨’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이슨은 영국 동부 잉글랜드의 노퍽주(州)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영웅 서사시일까 질색했다면 괜한 걱정이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에는 발명가 다이슨의 면모가 녹아 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자 다이슨은 형제들과 집안일을 나눠 맡아야 했는데, 당시 비효율적이었던 가전제품은 그에게 숙제로 남았다. 독자는 여기서 다이슨 제품들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소년 다이슨은 콘센트에 꽂아놓은 진공청소기 전선 길이 제한 때문에 청소에 애를 먹었고, 먼지 봉투를 교체하는 것도 불편하게 느꼈다. 훗날 다이슨이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들어낸 배경이다.

책의 부제는 ‘5126번의 실패에서 배운 삶’이다. 다이슨은 최초의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DC01’을 내놓기까지 5126개의 실패작을 겪었다. 실제 생산까지는 14년이 걸렸다. 책은 성공담보다 실패담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비용 절감 문제로 생산을 중단한 세탁기나 배터리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좌초된 전기 자동차 이야기도 공개했다.

그는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을 일생 실천해왔다. 커크다이슨을 설립해 정원용 수레인 볼배로를 성공시켰지만, 카피캣(복제품)이 쏟아지고 여러 문제가 얽혀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맛본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다이슨은 특허권의 중요성을 익힌다.

다이슨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이미 접해본 사람이라면 책의 전반부나 중반부보다는 후반부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중반부는 기술과 부품에 대한 설명이 길어 엔지니어의 집착이 느껴지는데, 일반 독자들이 읽어나가기엔 지루한 면도 있다.

후반부에서는 다이슨을 둘러싼 최근 이슈를 만날 수 있다. 여덟 번째 장인 ‘세계화’에서 다이슨은 영국의 브렉시트를 공개 지지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유럽연합(EU)의 규제 기관이 다이슨에 불리한 규정을 앞세워 다이슨의 부상을 교묘하게 저지했다는 것이다. 9장부터 12장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다이슨이 2000만파운드(약 330억원)를 들여 30일 만에 기존보다 더 작고 이동이 편한 인공호흡기를 만들어낸 과정, 다이슨이 다이슨기술공학대를 설립하고 농업 분야에 투자하는 이유 등이 담겼다.

다이슨은 책 말미에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을 인용한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뿐이다.” 다이슨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은 계속될 것이란 의지가 담겨 있다.

책의 만듦새는 혁신적 디자인과 편의성을 앞세운 다이슨에 대한 책답다. 접착제가 아니라 실로 종이를 엮는 방식의 사철제본을 택해 두꺼운 책인데도 모든 페이지가 완전히 펼쳐져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기 수월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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